원래 산업재해(줄여서 산재) 승인 여부는 한달까지는 안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검색으로 알아본 바로는 빠르면 며칠에서 2주 안에는? 결과가 나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저는 한달이나 걸렸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회사측에서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버텼었기 때문이죠.
일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유튜브에 여러 전문가들의 영상들이 다양하게 있습니다.
저도 그 영상들만 보고 혼자 산재를 신청해서 승인을 받았는데요, 그 과정을 간단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유튜브에서 산재에 대한 정보를 어느정도 습득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일하다가 다쳤다
지난 포스트를 읽어봐야 자세한 이야기를 아실 수 있습니다.
대충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저는 부당한 업무지시로 누구든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쳤습니다.
그전부터 쌓여오던 불만 + 다친 것으로 인해 퇴사를 결심했죠.
만약 저와 똑같은 상황이라면, 다친 날에 무조건 병원 내에 원무과가 있는 큰 병원으로 가셔서 일하다가 다쳤다고, 산재를 신청할 거라고 미리 말을 하시고, 어떻게 다친 건지 처음부터 의사 선생님께 자세히 말씀하세요.
그리고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마시고 쉬세요. 다쳤는데도 나가서 일하면 산재 승인도 안나고 보상도 못 받습니다.
물론 저와 똑같은 상황(회사에 불만 많음 + 억울하게 다침 + 회사 그만둘 거임)일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경황이 없고, 지식이 없어서 다친 후에도 이틀을 더 일했습니다.
병원에다가는 일하다가 다쳤다는 말도 안 하고, 정확히 어떻게 다친 건지도 자세하게 설명을 못했고요..
그래도 산재는 승인받았습니다.
참고로 저의 부상의 정도는 입원을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꼭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큰 부상을 당해야만 산재가 승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일하다가 다쳤다는 증거를 반드시 남겨라
유튜브에서도 항상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어떻게 증거를 남겼는지 경험을 공유해보겠습니다.
저는 수요일에 다쳐서 병원을 다녀왔고, 목요일에 퇴사하겠다고 말하고, 금요일까지 출근을 하고 일을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제가 부당한 업무지시로 일하다가 다쳤다는 증거를 남겨놔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산재에 대해서 아직 자세히는 몰라서 제가 진짜로 산재까지 신청할지는 몰랐었는데도, 왜인지 모르게 증거를 남겨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증거를 어떻게 남겼느냐..
회사의 카드를 가지고 있는 이사님에게 토요일에 전화를 걸고 통화를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사님, 일은 그만뒀어도 여기서 일하다가 다친 거니까 마지막으로 회사 카드로 다시 한번 병원 가볼 수 있을까요? 당연하게 지게차로 들어 올려야 하는 무거운 장비를 사람들에게 들어서 내리라고 시켜서 정말 어이없게 다쳤잖아요.. 그래서 정강이에 만약에 흉터라도 남으면, 볼 때마다 그렇게 황당하게 다친거 떠오르면서 기분도 안 좋아질 것 같아서.. 다시 병원 가서 제대로 상처 보여주고, 어떻게 관리해야 흉터도 안남을지 제대로 듣고 관리하고 싶어서요.."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이때 상대방이 인정을 하면 이 녹음으로 제가 일하다가 다쳤다는 것이 입증이 되겠죠?
어떻게 다쳤는지에 대한 내용도 들어가 있고요.
이사님은 알겠다고 하시며 월요일에 회사카드 줄테니 회사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덧붙이셨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겠다고.. 연락 없으면 월요일에 오라고..
이 말은 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했던 빌런, 회장이라는 인간이 반대를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지땜에 다친 건데 설마 그럴까.. 싶었는데 그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회장의 적반하장
몇 시간 뒤에 이사님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씨, 회장님이 전화 주라고 하시네.." 라고.
회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무슨 일인지 뻔히 알텐데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어보더군요.
자기랑 직접 이야기하면 기죽어서 말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어쨌든 이사님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재방송을 하니까 다짜고짜 언성이 높아지면서 무슨 병원이냐고 약 바르라고 합니다.
일하다가 다친 직원을 치료해줘야 하는 것은 회사의 의무인데.. 그것도 혼자 잘못해서 다친 것도 아니고, 누가 일했어도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 회장 본인인데.. 책임을 안 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병원을 가야겠다고, 왜 병원을 가야겠는지 계속 주장하고, 회장도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그냥 연고 사서 바르면 된다고만 반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이가 몇인데 흉터 남는 것을 걱정을 하냐"는 말까지 하더군요.
중간부터 통화를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병원 보내달라'와 '연고 발라라'만 반복했습니다.
벽에다가 대고 말하는 기분이었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아니, 도대체 왜 병원을 안 보내주려고 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답은 뻔했습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 사이에서 소문난 짠돌이인 회장인데, 돈 아까워서 그런 것이죠.
다쳤을 당시에도 지게차 부르는 비용이 아까워서 절 다치게 한 거고요.
'이 인간 입에서 솔직하게 돈 아깝다고, 나 짠돌이라고 인정하는지 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봤던 겁니다.
대답 회피하고 계속 앵무새처럼 연고 연고 타령만 하는데 제가 재차 왜 병원을 안 보내주려고 하는 거냐고 묻자, 질렸는지 "그럴 거면 산재 신청해라!!"라고 말하더군요.
산재 신청을 하는 건 하는 거고, 그러니까 당장 다녀야 하는 병원비를 내달라고 계속 물고 늘어졌습니다.
역시나 순순히 내주겠다고 하지는 않고 언성 높이면서 헛소리만 하시는데, 제가 계속 병원비를 내달라고 하니까 또 마지못해서 "그래! 월요일에 와라! 어디 한번 병원 같이 가보자!!" 라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산재 신청, 그리고 주변의 부정적 반응
회사는 결국 안 찾아갔습니다.
집에서 꽤 거리가 있기도 하고, 회장이 흔쾌히 '당연히 병원 보내줘야지' 같은 반응이 아니었고, 화를 버럭버럭 내다가 마지못해서 '어디 한번 병원 같이 가보자' 같은 반응이었기 때문에 저도 더 이상 회장얼굴 보고싶지 않아져서 안 갔습니다.
회장이 자기 입으로 홧김에 산재 신청하라고 말을 했으니 '그래, 한번 신청해보자' 하면서 유튜브에서 산재 관련된 영상들을 거의 다 봤습니다.
막연하게 산재 같은 것은 정말 크게 다쳐서 입원을 하거나, 혹은 사망을 해야만 인정되는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유튜브에서 정보들을 모아보니 어쨌든 일하다가 다쳤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제가 녹음해뒀던 통화, 제가 일하다가 다쳤다는 증거를 남겨놓은 것이 참 잘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어차피 회사도 그만뒀고, 회장은 적반하장을 하면서 병원비도 책임을 져주지 않고.. 산재 신청을 안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제가 산재 신청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변에 하니, 그중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두 사람 있었습니다.
제가 그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어디 부러져서 입원하거나 해야 인정되는거 아니냐고.. 오바하는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던데.. 안 그래도 억울한 상황에서 응원은 못해줄 망정 이렇게 말하니 기분이 많이 나쁘더군요.
저도 주변의 그런 반응에 혹시라도 산재가 인정이 안돼서 병원을 가도 내 돈만 날아가는 것으로 끝나게 될까봐 병원도 못 갔습니다.
결국 승인될 것을 알았으면 병원 가둘걸.. 후회가 됩니다.
산재신청을 위해서 다쳤던 당일에 갔던 병원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필요한 서류인 최초요양급여신청서를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아주아주 상세하게 작성을 했고, 병원 측에서 작성해야 하는 서류인 최초요양급여신청소견서를 따로 받았습니다.
병원에 원무과가 있다면 병원에서 신청을 대행할 수 있지만, 저는 그냥 제가 직접 해보고 싶어서 병원에서는 최초요양급여신청소견서만 받고 직접 근로복지공단으로 찾아갔습니다.
기나긴 기다림.. (feat. 원래는 길게 안 걸림)
결과가 어떻게 될까.. 계속 기다리는데 연락이 안 오니 점점 지치고 포기하게 될 것 같더군요.
다친지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갈 때..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고 (그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연락이 안올 것 같다고) 느낌이 와서 근로복지공단에 전화를 걸어서 제 사건을 맡은 담당자의 번호를 알아냈습니다.
담당자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는 분도 너무 오래 걸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담당자 분과 통화를 해서 다친지 거의 한달이 되어가는데 연락이 안 와서 연락을 드렸다고 하니..
담당자 왈.. 업체 측에서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오래 걸렸다고 하시더군요...;
유튜브에서는 그럴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에서 또 저에게 연락을 줘서 다시 사실 관계를 확인할 거라고 했었는데..
담당자분이 업무가 많아서 정신이 없으신 건지 어쩌신 건지.. 저에게 연락만 줬으면 제가 녹음한 파일들을 줬을 텐데..
만약 제가 계속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냥 포기했다면 저에게 계속 연락도 안왔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담당자분에게 "저에게 일하다가 다쳤다는 증거를 녹음한 파일도 있다"고 자신 있게 어필을 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대화를 더 하고, 마지막에 담당자분께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이 너무 힘이 됐습니다.
어쨌든 그 회장이라는 인간..
지가 먼저 산재 신청하라고 하길래 신청했더니, 진짜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사람이 와서 조사를 하니 발뺌을 하다니.. 산재 신청하라는 말도 그냥 홧김에 한 말이었었나 봅니다.
정말 가지가지하는 치졸함의 끝을 보이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산재 승인
담당자 분과 통화를 마치고 바로 다음날에 산재 승인이 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이걸로 어쨌든 회사에 불이익은 조금 가게 됐을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있었던 것이.. 승인이 너무 늦게 되어서 병원 치료를 더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다친 날로부터 3주 동안에 다닌 병원비와 약재비 등을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승인이 빨리 되었다면 병원을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이미 기간이 지나버린 상태에서 승인이 되어서 뒤늦게라도 병원을 더 가보고 싶다면 사비로 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담당자분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물어봤다면 해결책이 있었을지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병원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올 부상은 아니었으니..
가장 큰 보상은 휴업급여였습니다.
이거라도 신청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생각보다 휴업급여가 많이 나와서 이 돈이 나라에서 나오는 돈인지, 아니면 회사에도 그만큼 피해가 가는 것인지가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제발 부디 회사에도 피해가 가는 것이었다면 좋겠습니다.
회장이 지게차 7만원 부르는게 아까워서 직원을 갈아 넣으려다가, 그것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피해를 입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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