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때 가입했던 대학교 밴드 동아리..
그 동아리에는 정말 좋아했던 선배가 있었다.
내가 마치 팬과 같은 느낌으로 그 형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형도 나를 예뻐해줬고, 우리는 친하게 지냈다.
앞으로 평생 함께할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15년 이상을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오해가 생긴 건지 어쩐건지도 확실히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못한 채 우리들은 멀어졌다.
멀어진 계기는 참 허무했다.. 그 형도 같은 동아리 내에서 친했던 선배가 있었다.
그런데 그 선배는 졸업과 동시에 광주를 떠나서 광주에는 없는 선배였다.
그랬던 그 선배가 다시 광주에 와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나와 친했던 그 형은 나보다는 그 선배랑만 놀기 시작했다.
확실히 나보다는 여러모로 잘 맞았을 거다.
둘 다 술을 좋아했고,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으니..
(언젠가 형에게 "넌 술도 안마시는데, 너랑 무슨 재미로 노냐?" 라는 말을 실제로 들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형은 그 선배와 함께 밴드를 결성했다.
그 시기쯤에 형에게는 여자친구까지 생겼다.
더더욱 나와는 만날 시간이 없어졌다.
우리는 정말 과거에 친했던 사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고,
광주라는 참 좁은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2년 동안 얼굴 한 번도 보지 않고 지낼 정도로 멀어졌다.
나는 정말 어쩌다가 가끔 그 형과 통화라도 하게 되면 농담인 것처럼 말하곤 했다.
서운하다고, 다른 사람들이랑만 놀고.. 나랑은 그렇게 얼굴 볼 시간이 없냐고..
이대로라면 난 형이 결혼해도 결혼식 안갈 거라고..
그런 통화 후에도 우리는 만날 일이 없었고, 나는 그 형의 근황을 SNS를 통해서나 접하게 되곤 했다.
원래대로라면 형의 입으로 직접 전해 들었을 형의 근황을 SNS를 통해서나 접하게 되었다.
나와 굉장히 인연이 깊은 나라인 일본을.. 언젠가는 형이랑 같이 여행 가보고 싶어했던 일본으로 투어를 간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서 알게 됐을 때에는 정말 남이 된 것만 같았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시간은 뭐였지..? 나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다시 돌아온) 선배의 대용이었나?'
'나보다 밴드가 더 중요하고, 여자친구가 더 중요한가?'
나는 점점 서운한 마음이 커져가면서, 결국 내가 폰을 바꾸면서 연락처가 바뀔 때..
형에게 내 연락처를 알려주지도 않았고, 그 형의 연락처도 지웠다.
그리고 SNS도 차단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서운함과 동시에 자기반성을 하기도 했다.
'나랑 전에 이런저런 문제로 다퉜을 때 나에게 앙금이 남아있었던 건 아닐까?'
'형이 같이 트랜스포머 보자고 했을 때 나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안 본다고 해서 서운했을까?'
'예전에 돈 빨리 안 갚는다고 내가 재촉해서 다퉜을 때, 정이 떨어졌던 것은 아닐까?' 등등..
그런데 혼자서 그런 생각에 깊게 빠지다가도
'나에게 연락을 전혀 안 해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가 연락처를 바꾼 사실조차 인지 못하고 있는거 아니야?'
'그 형은 나에 대해서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데 나 혼자 이러고 있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그럴 때면 나도 모든 생각을 훌훌 털고 그 형을 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재작년 6월에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
형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 말을 듣고 바로 그 형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연락을 할 뻔했지만..
나는 그전에 그 형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했다.
그 형은 본인이 암에 걸린 사실도 유머러스하게 인스타에 게시를 했고,
반드시 이겨낼 거라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글들을 보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 연락해볼까.. 라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결국 그것을 막았다.
'외향적인 그 형은 새로 생긴 수많은 인연들과 아주 잘 지내고 있고, 나는 잊은지 오래고 생각도 안하고 있겠지..'
라는 못난 생각을 하기도 했고,
내가 다시 연락을 한다고 한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오~ 정말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한때는 정말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색해져버린 사이가 됐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연락을 한다고 치면.. 예전 이야기들을 꺼내면서 서운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고.. 그러고 나서야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존재를 생각도 안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암환자에게 갑자기 나타나서 그런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대로 내가 그 형의 인생에서 안 나타나는 것이 더 도와주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인스타를 가끔 들어갈 때마다 그 형의 계정을 염탐했다.
작년 말에는 전이된 암이 발견돼서 또 수술을 한다는 글을 보았다.
하지만 역시 글에서는 여유가 보였고, 자신의 병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 역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번 보러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너무 바쁘지만.. 이 바쁜거 다 지나가면.. 5월에 잠시 한가해지면..
그때에는 꼭 연락해서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형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어제 토요일 낮에 전해 들었다.
프로젝트로 정신없이 바쁜 상황에서 그걸 전해 듣고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한두 시간 동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형과 함께 했던 추억의 순간들이 자꾸 생각이 났다.
'그래.. 오늘은 일찍 접고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보러 가자..'
프로젝트는 일찍 접고, 저녁에 장례식장으로 갈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집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폰을 보니 카톡에 읽지 않은 대화가 수십 개가 있었다.
무슨 일인고.. 하니 수십 개의 미확인 메시지는 내가 다니는 학원의 단톡방이었다.
같은 반에 코로나 확진자가 한명 나와서 25명 전원이 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례식장을 갈 모든 마음의 준비와 출발할 준비를 다 마치고 나가려는데..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는 학원에서 5명씩 5팀으로 따로 나눠서 등원을 하기 때문에 확진자랑은 최근에 마주친 적조차 없다.
그렇다고 신경 쓰지 않고 장례식장을 가자니..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장례식장을 가지 못했다.
나는 그 형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보러 갈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허무하게도 오늘 받은 코로나 검사의 결과는 음성이었다.
어제 장례식장을 갔어도 되는 것이었다.
코로나도 음성 판정받았겠다.. 오늘이라도 장례식장을 가려면 갈 수는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오늘의 약속이 따로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타지의 친구가 광주에 와있는데, 난 전부터 했었던 이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이 친구와의 만남이 끝난 후에라도 갈 수는 있었겠지만,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요일 아침을 시작했었다.
친구와 만나고 나니 너무 피곤해졌고, 유난히 추웠다.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월요일을 위한 준비를 하며 쉬기로 했다.
형과 함께 했던 과거로는 이제 돌아갈 수 없다.
서운함을 참지 못하고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고 잠적을 했던 선택을 다시 무를 수도 없다.
내가 굉장히 한가하고 시간이 남아돌 때에는 형이 바빠서 나랑 만나주지도 못했는데,
이제 형이 편히 쉬게 되니 내가 사정이 생겨서 마지막을 보러 갈 수도 없게 되었다.
용석이형.
고3 때 처음 봤던 형의 공연은 그 당시 저에게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광주에 이런 팀도 있다니.. 형을 보는 건 정말 연예인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제가 입학한 대학교의 밴드 동아리가 형이 있었던 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형 때문에 그 동아리에 가입을 했던 거예요.
저 예뻐해주고 친하게 지내줘서 고마웠어요.
저 동아리 탈퇴하고 나서 같은 기수 애들이랑 악연으로 끝날 뻔한 거, 형 덕분에 오해 풀고 좋은 인연으로 끝났어요.
형이랑 같이 먹었던 밥, 같이 갔던 카페, 같이 봤던 영화, 형이 시켜준 드라이브..
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정말로 이렇게 다시는 못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다시는 못보게 되고 나서야 형이 얼마나 날 생각해줬는지 느끼게 되네요.
제 주위에는 형 말고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도 없어요.
형이 찍어준 제 인생샷을 보면서 형이 얼마나 저를 아꼈었는지 느낍니다.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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