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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미스티의 삶

초반의 유학생활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by mystee 2019. 12.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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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학을 다녀온 나라의 이름은 이제 되도록 언급을 안 하려고 한다.

나는 나의 첫 해외생활과 모험기를 다루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인데,

그 나라의 이름이 본문에 자주 들어가서인지, 자꾸 일본어로 된 광고가 떠서..

정말 필요할 때 말고는 나라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 ㅎㅎ

 

 

 

혼자 살 집을 구해서 자유롭게 혼자 살고 있었다.

내 인생 첫 해외생활임과 동시에 혼자 사는 것도 처음이었다.

가끔 외롭기도 했지만, 혼자 사는게 참 괜찮았다.

 

아르바이트도 구해서 더 이상은 적자 생활을 하지 않았다.

돈이 다 떨어져서 초기부터 유학에 실패하고 귀국할 일은 없어졌다.

일하는 시간대도 딱 좋았다.

평일 아침 오전 시간대에 4시간 정도를 일했다.

그리고 끝나면 점심을 먹고, 바로 어학원을 가서 공부를 했다.

그때가 10년 전이라 학교 수업 시간대가 가물가물 하지만

대충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학교가 끝났던 것 같다.

그 후로는 자유였다.

주말에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에서 하루는 쉬고,

하루는 그 호텔 청소 일을 아침부터 9시간 혹은 10시간을 했는데,

주말의 일은 평일의 일과 다르게 너무 힘들었다.

 

 

 

학교 하교 후 아사쿠사를 놀러갔을 때.jpg

 

 

 

첫 담임이었던 H선생님과도 많이 친해졌다.

다음 클래스로 올라가면서 H선생님이 이제는 담임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일주일 중에 하루는 H선생님이 수업을 해주셨다.

이 매력 넘치는 동갑내기 선생님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업 중에 배운 문장이나, 혼자 집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익히게 된 일본어들을 조합해서

다음날 H선생님에게 써먹어보고 싶은 표현, 물어보고 싶은 질문 등을 정리해서

혼자 그걸 연습하다가 다음날에는 실제로 질문도 해보고 그랬었다.

어느 날은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H선생님이랑 좋아하는 밴드가 두 개가 겹쳐서 더 친해졌던 것 같다.

참고로.. 처음에는 H선생님을 약간 이성으로 볼 뻔하기도 했지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들은 후로 마음을 접었었다.

 

목표로 하고 있는 음악전문학교의 진학을 위해서는 알바 하나로는 부족했다.

저녁 늦은 시간에도 일할 곳이 필요했다.

그런데 두 번째 알바를 유학생활 3~6개월 사이에 덥석 구하게 돼버렸다.

짬뽕가게의 주방 일이었다.

여기는 손님이 한국인들이 많은 곳도 아니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한국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본어로 혼자 면접을 보고 붙어서 첫 알바를 구했을 때와는 또 다른 희열을 느꼈다.

이렇게 알바를 두 개를 병행하자.. 바빠지고 힘들긴 했지만, (이곳은 일주일에 3~4일을 일했다.)

두 곳 합쳐서 월급이 20~21만엔이나 받아서, 너무 좋았다.

이대로라면 음악전문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어학원에서의 성적도 몇 학기 동안 계속 1등을 더 유지했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말이다.

 

 

 

 

또 1등. 성적은 전 학기보다 더 올랐다.

자랑을 하자면 같은 레벨의 옆반인 B2클래스의 1등인 학생과 점수 차가 정말 많이 났다고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똑같은 그 이야기를 들은 B2클래스에 있던 아는 학생 한 명이 나에게 '너네만 1등이 누구냐'고 물었었다.

 

 

 

두 번째로 맞이하는 종료 테스트는 하필 나의 생일이었다.

나는 해외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내 생일에 시험을 봐야 하는 것이었다.

전 학기에 이미 한번 1등을 해서 1등을 놓치고 싶지 않아진 나는 성적표가 다음날에 나오기 때문에

너무 궁금해서 못 견딜 것 같았지만,

친해진 H선생님이 이번 학기에도 내가 1등이라고 핸드폰 메시지로 알려주었다.

절대 밖으로 누설하면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생일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유학 중이었던 나는

다른 학생들처럼 돈에 여유도 없었고, 그래서 같은 반의 한국인 친구들과 그렇게 잘 어울리지 못했다.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친한 것도 아닌,

그래서 생일은 그냥 다른 평일과 마찬가지로 하교하자마자 혼자 집으로 가서 쓸쓸히 보냈다.

 

 

그 생일 때에 먹은 초밥 도시락을 기념샷으로..

기껏해야 혼자서 이렇게 평소에는 잘 안 사먹던 도시락을 사먹는 것이

당시의 나의 나름대로의 사치이자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은 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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