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포스트와 이어지는 글입니다.
구 국군광주병원 GB Commission
10월 18일 일요일에 구 국군광주병원을 찾아간 필자 미스티.
시간이 돼서 병원 본관으로 가는 문이 개방이 되면
마스크를 한 채로 입장해서 이름과 연락처 등을 적고,
체온 검사까지 마치고 나서야 입장이 가능해집니다.
그때 위와 같은 내용이 프린트가 된 A4용지 한장을 받고 들어가게 되는데,
GB4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GB5, 마지막에 GB3를 보게 되는 순서였습니다.
GB4와 GB5는 병원 본관 건물이고,
GB3는 이전의 포스트에서 보여드린 국광교회입니다.
일단 위의 팜플렛에 적힌 내용들을 그대로 옮겨적어보겠습니다.
GB 커미션
《GB 커미션》은
개최지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와 담론의 시각화를 위해 2018년 첫 선을 보인 신작 제작 프로젝트이며,
세계적인 작가들의 심도 깊은 연구조사를 통해
지역의 역사, 예술전통, 시민정신과 관련된 가치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신작을 선보인다.
이 과정을 통해 광주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관통하며
역사적 현장과 결합한 작품을 통해 우리가 물려받은 사회 및 정신적 유산에 대해 현대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5.18 민주화운동의 상처를 문화적으로 치유하고자 했던 광주비엔날레의 창설 배경을 재고한다.
올해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메이투데이》와 연계하여
마이크 넬슨, 카데르 아티아, 시오타 치하루, 호 추 니엔 그리고 임민욱의 커미션 프로젝트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구 국군광주병원에서 선보여진다.
구 국군광주병원 (사적 23호)
계엄군에 체포되었던 시민들은
상무대에 설치되었던 계엄사령부로 끌려가 갖은 고문과 구타를 당하면서 심문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부상당한 시민들은 국군광주병원(국군광주통합병원)으로 실려와 엄중한 감시 아래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광주의 숨어있는 수호천사 역할을 한 의료진들은 시민들이 보안대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환자들의 상태를 거짓으로 보고해서 보호해주었다고 한다.
2년 만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게된 구 국군광주병원..
다시 이렇게 들어가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2년 전의 전시에는 병원 본관의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번 전시는 본관의 정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건물의 일부에서만 진행이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예전 병원의 특이한 건축양식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정문이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전시를 보러 온거지 건물을 보러 온 것은 아니니
살짝 남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본관의 옆길로 들어가서 GB4를 향해서 갔습니다.
GB4 카데르 아티아 Kader Attia
지도에 GB4로 표시된 곳의 1층으로 들어가니
4개의 영상 자료들과 헤드폰들이 놓여있었습니다.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들을 지나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방들이 있고 그 방들 안에는..
이미 보신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작품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미 재작년인 2018년 광주비엔날레 때에
비엔날레 전시관에 전시가 되어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518 관련된 작품이라고 설명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2년 후인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인 올해에,
518 사적지에 다시 이 작품이 전시가 되다니..
아쉽게도 의자에 놓여있는 이 다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해주시는 큐레이터 분이 안계셔서 알 수가 없었습니다.
GB4 카데르 아티아
집단적 트라우마는 모든 근대성의 유령이다.
트라우마는 상흔을 남기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는다.
상처가 난 이후에도 외상 후 증후군으로 끈질기게 남아 고통 인식의 부재 속에 고통을 자아내고 심지어 증폭시킨다.
한국의 학살 생존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진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실종자들을 대신해 내적 평화를 되찾는 것이다.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추모비가 세워지고
군 병원과 보안부대 지하 조사실, 구 광주국군병원 병영이 폐쇄되고 폐허가 되었다 하더라도
상흔을 인정하는 의미로서 이들의 이야기를 인정하는 행위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어쩌면 영영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인의 상처나 집단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나 트라우마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카데르 아티아는 역사와 정치, 사회적 불의가 사회와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들에 미치는 영향을 작업의 틀로 삼는다.
아티아는 다학제적 접근 방식을 차용해 치유의 전통적 구조와 정치적 트라우마 경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고찰한다.
아티아는 다층적 관점에서 자신의 작품에 목소리를 부여하여
다양한 문화에서 상실과 상처에 대처하는 다양한 사상과 방법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물질계와 무형의 세계,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
현상계와 초자연계 간의 경계라는 복잡다단한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GB5 시오타 치하루 塩田千春
GB4를 나서서 GB5를 향해서 걸어갑니다.
그리고 또 다시 1층으로 입장
대기장소라고 쓰여있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분들은 단체로 우르르 다녔는데 저는 GB4에서 혼자서 시간을 조금 오래 끌었더니 혼자가 되었습니다.
안내해주시는 분께서 저 한명 때문에 잠궈놓았던 방 문을 열어주셨고,
그 방 안으로 들어가니..
방 하나 전체를 터널처럼 만들어놓은 설치 미술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다른 장소로 옮긴다거나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보입니다.
GB5 시오타 치하루
GB 커미션을 위한 시오타의 장소 특정적 설치 신작은
구 국군광주병원 본관에 위치한 작은 성당에 머물고 있는 기억, 영혼과 공명한다.
실타래와 성경책의 페이지들을 복잡하게 엮어낸 작가의 설치 작품은
5·18민주화운동과 함께 도래한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존재를 투영하며,
장소에 남겨진 흔적과 잔해에 스며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다.
16세기 일본에 소개된 기독교를 비롯한 문화적 영향,
특히 신념 체계와 인간의 지각 작용에 대한 영향은 <신의 언어>의 단초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국왕 히데요시는 신흥 종교를 위협이자 사회 안정을 뒤흔드는 영향력으로 인식했고 수많은 신자들을 핍박했다.
나아가 새로운 이념적 기반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성경책을 소유하거나 기독교의 상징을 내보이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 때문에 '구전' 신앙의 중요성이 커졌다.
하지만 구전을 거치며 정보가 수없이 변형되었고 많은 오해가 생겨났다.
일본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불교의 본질에 대한 경도를 집어넣는 경우가 빈번했다.
인간을 현존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 신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로 묘사하는 불교의 개념이 이들 신앙의 토대였다.
"우리 마음과 생각과 감정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우리의 신념과 결정의 원천이 된다.
몰래 기독교를 믿었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믿고 싶었지만 자신들이 믿을 만한 것으로 기독교를 변형시켜야 했다.
이는 정신적 이주이다"라고 작가는 기록한다.
성경책의 페이지들이 부유하는 시오타의 설치 작품은
정경(正經)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각색하는 행위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정신적 이주의 개념을 고찰한다.
"개개인의 생각 속으로 사라진, 잊혀진 단어들처럼 성경책의 페이지들이 공중을 떠다닌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검은 실들 차이로 뭔가 종이들이 보이는데,
성경의 창세기 장입니다.
일본어 성경도 마찬가지로 다 창세기 장입니다.
영어로 된 성경도 있었는데, 왜 찍을 생각을 안했는지...
영어도 분명 창세기였을 겁니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 예전에 비엔날레에서 이런 비슷한 느낌의 일본인의 작품을 본 기억이 있는데,
아마도 그 때의 그 작품도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작품은 그 방 하나로 끝이었지만, 병원의 빈방들도 구경을 해봅니다.
혼자라서 좀 무서웠습니다.
사진 찍기에는 편했지만요.
이제 마지막 장소인 국광교회를 향해서 갑니다.
GB3 마이크 넬슨 Mike Nelson
병원을 나서면서 주변을 여기저기 찍어보았습니다.
바람이 좀 더 세게 불어서 태극기가 확실하게 펄럭였다면 좋았을텐데..
떠나기 아쉬운 구 국군광주병원..
다음에는 정문으로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작품도 생기길 바라면서 나가봅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걷고있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제일 먼저 교회에 도착했는데..
이전의 포스트에 적어놓았듯이.. 저는 교회 앞에서 야생 너구리 두마리를 보게 됩니다.
저 밖에 못봤는데.. 혼자 좋은 구경했네요.
사진에는 담지 못한채로.. 너구리들은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이건...?
재작년에도 구 국군광주병원에서 열린 비엔날레 전시를 보셨던 분이라면 이미 봤을 작품이 또 있습니다.
2년 전에도 교회 안에 설치되어 있었던 작품이 계속 그대로 있었네요.
이번 전시에서는 큐레이터 분이 안계셔서 (계시는 날도 있다면 그 날에 맞춰서 또 가고싶네요.)
역시 아무런 설명도 들을 수 없었지만,
재작년에 이야기를 들은 제 기억으로는..
이 거울들이 구 국군광주병원에 설치되어있었던 거울들을 뜯어온 것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거울은 보는 것이죠.
이 거울들이 말은 할 수 없지만,
예전에 국군광주병원에서의 일들을 다 지켜본 목격자들이라는 것이 그 때의 설명이었습니다.
가장 안쪽의 불이 하나도 켜져있지 않은 으스스한 방에도 거울이 있습니다.
GB3 마이크 넬슨
구 국군광주병원을 처음 맞닥뜨린 그날,
작가는 전후 미국에서 왔을 법한 경첩과 문, 전등 스위치와 부품, 'Made in Japan'이 찍혀 있는 개수대 등
병원 건물의 면면을 통해 한국사를 목도했다.
병원은 이러한 관계들을, 기득권에 대한 이야기를 말없이 들려주며
그러한 관계와 기득권이 어쩌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병원 곳곳에 산재한 거울은 1980년 한국에서 집회와 시위,
구 국군광주병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5·18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시민운동이 일어난 까닭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준다.
병원을 배회하는 동안 작가는 텅 빈 건물에서 유형(有形)의 부재(不在)와 같은 존재감을 느꼈다.
작가는 거듭 또 다른 존재를 목격했다.
때로는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때로는 오후 햇빛에 밝게 형체가 드러나는 그 인물이 누구인지 작가는 금세 알아차렸다.
병원 건물 내부의 수많은 거울에 반사된 작가 본인의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전에 거울을 들여다보았던 이들의 시선이 쌓이고 모인 우물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에 작가의 마음이 요동쳤다.
거울들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증인이자 그간 목격한 역사로 가득 채워진 암호화된 위패이며
동시에 결코 수정되는 법 없이 그저 쌓이기만 하는 사진들이었다.
작품은 병원 본관에서 거울을 떼어내는 부분과 이 거울들을 교회에 재배치하는 부분, 두 가지로 구성된다.
거울 제거는 거울 속에 압축된 은밀한 역사를 제거하는 정화의 행위로 볼 수 있다.
한때는 액체였으나 이제는 고체가 된 거울은 거울이 목격한 진실을 해독할 얼어붙은 암호로 존재한다.
세속화됐지만 아직도 예배의 장소로 불리는 오래된 교회에 거울을 다시 거는 행위는
거울들에게 새로운 앞날을 제시하는 동시에 새로운 작품, 새로운 구성으로서 이전의 거처와의 결별,
과거라는 연옥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본 작품은 재작년에 본 그 장소에서, 그 작품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제 구 국군광주병원을 벗어나서 집으로 가야겠습니다.
다음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의 전시를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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