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PC로 작성되었습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에게는 가끔
줄 바꿈이 어색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포스팅에는
이야기를 하듯이 경어체를 쓰지만,
이 포스팅은 일기 형식의 글이므로
평서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
지난 이야기
♬ T.Rex - 20th Century Boy
그동안 이야기해왔듯이 나의 유학의 목적은 음악전문학교 진학에 있었다.
일본어가 어느 정도 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음악전문학교의 체험 입학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일본에 있는 전문학교에는 체험 입학이라는 것이 있다.
그 학교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체험입학을 신청하면
정해진 날에 하루동안 체험 입학을 할 수 있다.
체험 입학을 참가하면 하루 동안 그 학교의 수업의 맛(?)을 조금 볼 수 있다.
학교마다 진행 방식은 다른데,
내가 자주 갔었던 쇼비 뮤직 칼리지 전문학교 尚美ミュージックカレッジ専門学校의 경우에는
처음에 체험입학에 참가한 학생들이 모여서 학교의 소개 영상을 본다.
그다음 영상 상영이 끝나면, 그날의 체험 입학 때에 학생들을 지도할 선생님들의 소개를 했다.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등등.. 파트별로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리고 파트별로 서로 따로따로 떨어지게 된다.
보컬 선생님은 보컬 파트를 지원하는 학생들만 다 데리고 가고,
기타는 기타들끼리.. 그런 식으로 서로 다른 장소로 흩어진다.
그리고 오전 중에 레슨이 시작된다.
쇼비의 경우에는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은 Rock 곡을 한 곡 선곡해서 악보를 모두에게 나눠주고,
그 곡을 모두가 연습했다.
참고로 서로 떨어져있는 전 파트의 학생들이 다 같은 곡을 연습하고 있다.
오전 동안 그렇게 레슨이 끝나면 학교에서 점심으로 퀄리티가 꽤나 좋은 도시락을 제공해줬다.
식사도 선생님과 함께 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학생들은 식사하는 동안에도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처음에 흩어졌던 모든 파트의 학생들이
어느 합주실로 다 모이게 돼서 거기서 오전 동안 연습했던 그 곡의 합주를 했다.
학생들의 합주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선생님들의 시범 합주가 시작된다.
선생님들의 실력은 역시.. 다들 대단하셨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다 한번씩 돌아가면서 합주를 하게 되면 그날의 체험 입학은 끝이 났다.
만약에 베이스 지원자가 한명 밖에 안 왔는데, 보컬 지원자는 5명이나 있다고 치면,
베이스 지원자로 온 학생은 보컬 지원자들이 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를 때까지 5번을 연주해야 했다.
개이득인 부분이었다.
이 음악전문학교의 체험입학은 학교마다 조금씩 진행 방식이 다르다.
식사 시간 이전에 끝내거나 해서 식사 시간이 없는 곳도 있고,
다 같이 같은 곡을 연습하다가 마지막에 합주를 하는 시스템이 아닌,
그냥 정말 본격적인 악기 레슨처럼 진행하다가 끝나는 곳도 있다.
난 쇼비의 이 합주를 하는 체험 입학의 시스템이 너무 마음에 들었었다.
나 이외에도 가끔 유학생들이 보였고, 대부분이 일본인 학생들인데..
나에게 있어서는 외국인들인 이 일본인 학생들과 이름도 모른 채로 처음 만난 상태에서 합주를 한다는 것이
너무 멋진 경험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정말.. 선생님들과 서로 얼굴과 이름을 외울 정도로..
안내하는 스텝인 재학생과도 얼굴을 익히고 나중에는 대화를 나눌 정도로 여러 번 참가했었다.
학교 입장에서는 이미 체험입학을 체험한 내가 자꾸 또 와서
내 몫의 도시락까지 챙겨줘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절대로 이 학교를 다닐 생각이었기 때문에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본어학교를 다니던 당시의 (2009~2010년)
쇼비의 학비는 1년에 약 140만엔이었다.
유학생의 경우는 논문(?) 같은 것을 써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걸로 20만 엔이 DC 돼서 결국 1년에 120만 엔이었다.
정말 열심히 돈을 모아야 했다.
음악전문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유학시절의 사진을 몇 장 가져와본다.
그 당시에 쓰던 슬라이드 폰으로 사진을 간간히 찍기는 했지만,
지금의 스마트폰들처럼 기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들이 많지가 않다.
체험 입학에 참가했던 음악전문학교의 사진은 전혀 없다.
나는 2009년 말이 다가올수록 일본 유학생활에 지쳐가기 시작했었다.
항상 집, 아니면 학교, 아니면 알바였다.
가끔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에도 언제나 혼자여서 혼자 놀았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본인이 누군가를 만나기 귀찮아서 그냥 혼자 노는 거랑,
친구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서 혼자 노는 것은 기분이 다르다.
콘크리트로 된 딱딱한 계단에서 빗물에 미끄러져서 팔꿈치부터 계단에 찍어서 엄청난 통증을 느꼈을 때에도
나는 병원을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너무 아팠지만, 죽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니 뼈가 깨지거나 한건 아니겠지..
하면서 아픔을 참으면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도 돈이 없으면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이 냉정한 현실이 안 그래도 어두운 환경에서 자라온 나를 더욱더 어둡게 만들어갔다.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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