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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미스티의 삶

고등학교 시절, 그룹사운드(밴드)부 이야기

by mystee 2019. 11. 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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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듯이 경어체를 쓰지만,

이 포스팅은 일기 형식의 글이므로

평서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

 


 

 

 

지난 이야기

 

내가 기타를 치게 된 계기

이 블로그의 포스팅들은 PC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에게는 줄 바꿈이나 문단의 나눔 등이 어색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포스팅에는 주로 이야기를 하듯이 경어체를 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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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 JAPAN - Joker (1991)

 

 

 

클럽 활동 때에 내가 들어갈 동아리 1순위는 당연히 밴드부였다.

그런데 당시에 우유부단했던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바로 미술 선생님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친구들이 내 그림을 보고 나에게 그림 잘 그린다며 칭찬을 해주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려줄 것을 부탁해오는 애들도 많았었다.

 

중학교 때에는 1학년 때까지만 그림을 그리다가

그 후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실력(?)이랄 것도 없는 실력이 아직 조금 남아있었는지,

미술 선생님께서 미술시간 때에 내 그림을 보고 나를 스카웃 해가려고 하셨던 것이다.

 

미술 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시고는 클럽활동 때에 미술부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나는 밴드부에 들어가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나를 설득하기 시작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또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미안하기도 했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기도 했으니.. 우유부단했던그렇게 미술부를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클럽 활동 시간 때였다.

미술부 소속으로서 하얀 도화지에 열심히 예술의 혼을 불사르고 있던 어느 날, 일렉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당시 학교의 별관이었던 그 건물의 2층에 미술실이 있고, 바로 그 윗 교실이 음악실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다가 말고, 인도의 피리 소리에 춤추는 뱀처럼 계단을 올라가서 음악실로 가게 됐다.

 

마침 음악실 복도에서 혼자 기타를 만지작만지작 하고 있는 같은 반 아이를 보게 되었다.

그 아이와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기타를 건네받았다.

정확한 대화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나 기타 쳐봤었다' 라고 말하며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기타를 잠깐 줘보라고 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꼬부랑 할머니라도 치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그런데.. 기타 튜닝이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나도 튜닝기 없이는 제대로 튜닝은 못하지만, 헤드머신을 만지며 대충 튜닝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음악실에서 딱 봐도 윗 학년으로 보이는 선배 한 명이 갑자기 복도로 나왔다.

그러더니 나의 멱살을 잡으며 넌 뭔데 함부로 기타에 손대냐고...

하지는 않았고..

그냥 내가 대충 튜닝을 하고 기타를 치는 것을 조금 보더니,

기타를 쳐봤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더 이상의 긴 대화는 없이 나를 데리고 다짜고짜 음악실로 들어갔다.

 

음악 선생님은 무서운 분이셨다.

왜냐하면 음악시간마다 누군가는 꼭 체벌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분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무섭게 느껴졌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밴드부 선배와 내가 서있고, 그 앞에 음악 선생님이 염라대왕처럼 앉아있었다.

 

선배는 음악 선생님에게 내가 기타 튜닝을 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1학년에 기타를 칠 줄 아는 애가 없는데, 기타로 데려오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나는 미술부에 들어가 있다는 말을 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며 그날 갑자기 밴드부가 되었다...

 

상관이 없을 리가 없었다.

내가 손오공처럼 머리털 하나를 뽑아서 분신술을 쓰지 않는 이상,

클럽 활동 시간에 미술부에 앉아있거나, 음악실에 앉아있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미술 선생님에게 결국에는 밴드부를 하겠다고 말하며 미술부를 그만두게 되었다.

 

쓸데없는 미술부 이야기가 생각보다 너무 길어서 빼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애써 길게 적었으니 그냥 둬야겠다.. ^^

 

 

 

아는 사람들은 아는 반지. 이 시기의 사진이 없어서 이거라도 넣어봤습니다.

 

 

 

그렇게 밴드부가 된 나는

학교 축제 때 인생 첫 공연을 하게 됐고,

그 후로도 앞으로 즐거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았지만.. 분위기가 좋았던 건 오래가지 않았다.

밴드부는 양아치 소굴이었다. 선배들 중에 비흡연자는 2명뿐이었다.

 

3학년 선배는 보컬 한분뿐이었는데, 담배는 피우지만 후배들을 괴롭히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2학년 선배들은 각 파트별로 다 한 명씩 있었는데, 그중 보컬 형이 이 동아리의 실세였다.

원래는 3학년이었어야 했는데, 1년 꿇어서 복학을 한 형이었고,

예전에 뭘 하고 놀았던 건지 어느 손가락 한마디에는 조잡한 문신이 있었고,

왼손 약손가락 한마디는 잘리고 없었다.

(조직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손가락 내주고 나온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눈빛도 살인자의 눈빛이었고, 굉장히 다혈질에 폭력적이었다. 이 선배를 허선배라 칭하겠다.

 

나를 이 동아리로 들어올 수 있게 도와줬던 선배는 기타의 윤선배였는데,

처음엔 고마웠지만 허선배랑 가까운 편이었고, 역시 흡연자였고, 노는 세계가 달라서 더 친해질 수는 없었다.

흡연자 선배들은 다 허선배의 부하들 같은 느낌으로 허선배와 가까웠다.

 

또 다른 기타 신선배는 비흡연자였고, 키보드의 김선배도 비흡연자로,

이 둘은 후배들을 괴롭히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허선배와 가깝지도 않았다.

 

나머지.. 드럼 선배와 베이스 선배는 성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파트가 없지만 그냥 들어와있는 무에타이를 했다던 이선배.. 이렇게 셋도 흡연자, 허선배의 부하들 같은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밴드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는 이 동아리에 없었다.

술도 못 마시는 후배들에게도 억지로 술을 먹이고,

언제 어떻게 화를 낼지 모르는 다혈질 허선배의 눈치를 보며 동아리 생활을 했어야 했다.

학교 축제를 비롯해 어딘가 공연이 잡힐 때마다 항상 버스 막차가 끊길 밤 10시까지 남아서 합주를 했어야 했다.

합주라도 하면 다행인 거다..

딱히 실력이 안돼서 공연에는 끼지 못하는 몇몇 1학년 애들은 본인들은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도

항상 남아서 합주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어야 했다.

 

선곡의 자유도 없었고, 선배들이 고른 곡들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곡이 거의 없었다.

나를 포함한 여러 동기들이 이유 없이 얻어맞은 적도 많았다.

 

어느 날은 선배들이 계속 합주하는 것을 긴 시간 동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기인 드럼 치는 애가 기타 윤선배에게 다가가 뭐라고 조용하게 귓속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걸 본 보컬 허선배가 '너 뭐라고 했어!' 라고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드럼 치는 애가 '담배 한 개비만 달라고..' 라고 하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쨕!!"

소리가 나게 뺨을 후려갈겼다.

'이 $@%#가. 지금 심각하게 합주하고 있는데 와서 뭐? 담배를 달라고 그래?!'

그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이었는지 한대로 끝내지 않고 몇 대를 더 때렸는데, 윤선배가 말려서 겨우 멈추게 되었다.

 

나도 두번 정도 크게 맞은 일이 있었다.

한번은 아무 파트도 맡지않은 이선배에게 맞았는데,

내가 밴드부를 들어온 이후에 나를 따라서 밴드부에 들어온 내 친구를 자꾸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그것 때문에 좀 괴로워보였고,

나는 그 친구가 나를 통해서 밴드부에 가입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이선배가 또 내 친구를 괴롭힐 때에 그만 괴롭혀달다고 말을 했다.

이선배가 뭐라고 했냐고 때릴거 같은 분위기로 물었다.

나도 맞을 각오로 나 때문에 들어온 친구를 자꾸 괴롭히니까 내가 보기가 좀 그렇다고 그만 괴롭히라고 말했고,

그렇게 말한 다음에 그 자리에서 여러 차례 맞은 적이 있었다. ㅠ_ㅠ

 

또 한번은, 허선배가 나의 워크맨(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을 보더니

'어디~ 우리 미스티(물론 내이름)는 무슨 노래 듣는지 들어볼까?' 하며 들어보려고 했고,

윤선배는 놀리는 듯한 말투로 '엑스 재팬 노래 듣는대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또 허선배가 그때만큼 불같이 화낸 건 아니었지만,

'뭐? 이 매국노 새끼. 이리 와서 엎드려!' 라고 해서, 가서 엎드리자 발로 옆구리를 찼었다. ㅠ_ㅠ

 

매일매일 하교 후에는 모여야 했고, 우리 동기들은 그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다들 탈퇴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지만, 그 말을 꺼냈다가는 죽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마지못해 나오는 느낌이었다.

음악 선생님은 항상 선배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하교 시간에 맞춰 일찍 퇴근을 하셔서

이 모든 상황을 자세히는 몰라도 아마도 대충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편은 없었다.

 

 

 

 

안 그래도 험악한 동아리 분위기가 한층 더 험악해지는 사건이 생겼다.

기타 치는 신선배는 동아리 이외에도 밖에서 따로 만들어서 활동하는 밴드가 있었다.

어떤 팀인지 한번 보자며 신선배의 밴드 공연 때에 음악 선생님을 포함해서

선배들과 동기들 다 같이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의외로 신선배는 거기에서는 기타 파트가 아닌 보컬이었고, 목소리는 정말 반전 매력이었다.

드림시어터 DREAM THEATERPULL ME UNDER윤도현 밴드 버전의 담배가게 아가씨를 연주했다.

정말 잘했었다.. 고등학생들만 모인 팀의 실력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팀의 건반은 당시 중3이었다.

 

 

 

♬ DREAM THEATER - PULL ME UNDER (1992)

 

 

 

한층 더 분위기가 험악해진 사건이란,

어느 청소년 수련관에서 광주 지역의 청소년 밴드 경연대회가 개최되었고,

음악 선생님의 지휘 하에 우리 동아리도 그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신선배가 따로 하고 있는 밴드에서도 그 대회를 참가하려고 했고,

한 사람이 두 팀에서 뛰면서 출전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신선배는 그 사실을 음악 선생님께 털어놓으며

자기는 그 팀으로 참가를 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어른스럽지 못했던 음악 선생님은 굉장히 못마땅해하며 신선배에게

절대로 그렇게는 안된다고 하시기도 하고.. 그 밴드를 나가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정말 분위기가 안 좋았다. 다행히 이 일에 관련된 구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조건부로 음악 선생님은 신선배의 이야기를 받아들여주었다.

그 조건은.. 경연대회 전까지 경연 때에 연주할 곡의 나의 연주 실력을

신선배가 가르쳐서 신선배 실력만큼 올려놓으라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못하면, 신선배는 그 팀의 멤버로 경연을 참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연주해야 하는 곡은 야다이미 슬픈 사랑이었다.

솔로는 윤선배가 연주하기 때문에 백킹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당시 나의 실력은 파워코드 잡는 법을 이제 막 알게 된..

오른손 팜 뮤트도 제대로 못하는 꼬꼬마였기 때문에 신선배의 고뇌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나는 신선배 편이었고, 신선배가 아무 문제없이 그 팀으로 출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했었다.

 

이때 나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굉장히 실력이 많이 올라갔었다.

파워코드 잡고 하는 백킹에 있어서는 마스터를 한 느낌이었다.

이 몸의 노력 덕분에 신선배는 자유의 몸이 된 채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결전의 날이었다.

드림시어터 DREAM THEATER의 PULL ME UNDER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각 파트별로 얼마나 연주하기 어려운 곡인지..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신선배의 팀의 팬이 되어있어서 신선배 팀이 우승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날 처음 본 여러 팀들 중에서도 잘하는 팀들이 많았었다.

 

음악 선생님은 공연 전에 모두를 불러 모아서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공연할 멤버들이 파이팅할 수 있도록 멋있는 말들을 하신 다음에 다 같이 팀(동아리) 이름을 부르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공연을 했다.

당시의 나는 꼬꼬마였기 때문에 완벽하게 연주를 해냈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 기억으로는 큰 실수는 없이 무난하게 연주를 마쳤었다.

 

결과는..

정말로 신선배의 팀이 우승을 했다.

우리 동아리는 아무 상도 타지 못했다.

마지막에 1위 팀이 호명될 때에 신선배는 수많은 눈동자들이 노려보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기뻤는지

점프를 하면서 난리 브루스를 치며 좋아하고 있었고, 음악 선생님은 똥을 씹은 얼굴을 하고 계셨다.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다가 겨울방학이 되었다.

이제 곧 2학년이 된다.

그 험악한 분위기의 동아리에서 잠깐 동안은 벗어날 수 있는 정말 좋은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우연히 다모임이라는 사이트의 어느 게시판에서 밴드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YMCA 서구문화센터라는 곳에 소속이 되는 밴드로, 전 파트를 다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그런데 그 게시글을 보다가 이게 신선배와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선배의 연락처가 적혀있었거나, 신선배네 팀 이름이 적혀있었거나 그랬던 것 같다.

신선배에게 연락해서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봤고..

자세한 설명은 들은 나는.. 양아치 동아리가 아닌 진짜 음악을 하는 사람들과 밴드를 하고 싶어 졌다.

각각 다른 학교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애들이 모여서 팀을 만든다는 게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무서운 선배들하고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에 군기가 빠진 나는 겁도 없이 그 밴드의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심사위원들의 대부분은 정말로 신선배 팀 멤버들이었고, 나도 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디션이 끝났고.. 붙어버렸다..

그 뒤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개학은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밴드부와의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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